SK의 프렌차이즈 스타, SK의 에이스 또 10년간 국가대표 선발의 자리를 지켜온 김광현 선수입니다.
--김광현 프로필--
- 생년월일: 1988년 7월 22일
-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 학력: 덕성초 - 안산중앙중 - 안산공고
- 신체: 188cm 88kg
- 포지션: 투수
- 투타: 좌투좌타
- 프로입단: 2007년 1차지명 (SK 와이번스)
- 가족관계: 배우자, 1남 1녀
- 병역: 2008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등 면제
- 연봉: 15억원
김광현의 아마추어 시절
김광현은 어렸을때 부모님이 굉장히 야구를 좋아하셔서 주변 야구장인 잠실야구장을 자주 가다보니 야구에 흥미가 생겨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188cm의 장신이지만 중학교때는 키가 150cm밖에 안되었다. 그러나 중학교 재학 동안 무려 키가 30cm가 자랐다고 한다. 성장통이 너무 심해 뛰기도 힘들었던 적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생이었던 김광현은 큰 키에서 내리꽂는 빠른직구와 고속 슬라이더를 바탕으로 타자들을 요리해 나갔다. 안산공고 재학 시절 김광현은 팀의 1선발 에이스였다. 당시 고교야구를 즐겨보던 팬들은 안산공고를 광현공고라고 부를정도로 안산공고 내에서의 김광현의 입지는 엄청났다고 보면된다. 안산공고는 김광현이 졸업하자마자 성적이 바닥을 기었다.
안산공고에서의 뛰어난 호투를 바탕으로 청소년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2006년 세계청소년대표팀에서 같은 좌완 라이벌인 양현종과 이천웅 등과 함께 차출되었다. 김광현은 만화처럼 8강, 4강, 결승까지 모두 승리를 기록하고 대회 4승을 달성해 내는 그야말로 미친호투를 펼쳤다. 김광현은 그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9l3-4Bn5Ns
김광현은 대회에서 한경기 19K를 달성한 적도 있다.
이런 뛰어난 활약으로 인해 1차지명으로 SK에 입단하게 되었다. 계약금은 무려 5억원이나 받으며 대형신인의 탄생을 알렸다.
김광현의 프로시절
김광현이 데뷔하기 1년전인 2006년은 만 19세 류현진이 프로데뷔시즌에 다승, 삼진, 평균자책점 1위를 하며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해 투수 골든글러브와 정규시즌 MVP를 받은 그야말로 류현진이 리그를 씹어먹은 시즌이다.
그정도의 활약은 아니더라도 김광현의 신인답지않은 엄청난 활약을 기대하는 SK팬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류현진은 '괴물'이었고, 프로의 벽은 만 19세의 김광현에게는 높았었다.
프로 데뷔 첫 경기에서는 양준혁에게 프로 첫 홈런을 맞고 4이닝 3실점, 그 이후 그래도 4,5선발로써의 제몫은 하나 싶었지만 다시 부진에 늪에 빠져 결국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8월에 다시 김광현은 1군 콜업을 받아 선발투수가 일찍 강판된 경기에 불펜으로 등판해 나쁘지 않은 투구를 보였다. 그 이후 신인치고는 괜찮은 피칭을 계속 보이면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3승7패 77이닝 3.62)
사실 한국시리즈에서는 불펜투수로만 등판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SK감독인 김성근 감독에 의해 갑자기 선발투수로 등판하게 된다. 심지어 상대 투수는 2008시즌 MVP이자 22승을 기록한 다니엘 리오스였다. 야구팬들과 많은 전문가들은 만 19세 투수에게 가혹하다고 평을 하며, 두산쪽으로 많이 기울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다.
그러나,
경기는 예상했던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신인투수 김광현의 볼을 두산타자들은 건드리기조차 힘들어 했으며, 구위가 엄청나 두산타자들의 방망이가 부러지는 일도 나왔다. 긴장을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를정도로 신인투수의 정면승부와 실실 웃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7 1/3이닝 1피안타 2볼넷 무실점 9탈삼진 만 19세 투수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던진 기록이다. 이로 인해 4차전을 SK가 승리하였고, 분위기가 완전히 SK쪽으로 넘어가 SK는 두산을 꺾고 정상에 오르게 된다.
김광현은 두번째 시즌부터 팀의 에이스가 되었다. 다승왕, 탈삼진왕, 평균자책점 2위, 승률 2위, whip 2위라는 기록을 세우고, 정규시즌 MVP와 투수 골든글러브 부문에서도 수상을 했다.
<2008시즌 김광현의 성적>
승 | 패 | 이닝 | 탈삼진 | 평균자책점 | WHIP |
16 (1위) | 4 | 162 | 150 (1위) | 2.39 (2위) | 1.17 (2위) |
이에 힘입어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고, 류현진과 함께 훌륭한 투구로 대한민국의 8전 전승 금메달을 받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로 인해 21살에 군면제를 받게 되었다.
2009시즌도 팀의 에이스로써 호투를 펼쳤다. 그러나, 8월에 김현수의 직선타에 손등을 맞아 시즌아웃을 당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본인이나 팀이나 아쉬운건 김광현의 페이스가 엄청 좋았기 때문에 2008년을 넘어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할 수 있을 지 않을까 라는 의견이 많았기에 더더욱 아쉬워졌다.
2010년에는 2008년 2009년을 넘어서 커리어하이를 찍게 된다.
<2010년 김광현의 성적>
승 | 패 | 이닝 | 탈삼진 | 평균자책점 | WHIP |
17 (1위) | 7 | 193.2 (1위) | 183 (2위) | 2.37 (2위) | 1.22 (5위) |
사실 김광현 본인으로써도 엄청난 시즌이고, 전체적으로 봤을때도 정말 뛰어난 시즌임은 맞으나 그 해 류현진이 더 좋은 기록을 내고, 이대호가 8관왕을 하는 등 김광현보다도 더 좋은 성적을 낸 선수가 많아 묻힌감이 없지 않았던 시즌이다.
2010년 시즌끝나고 김광현이 안면마비 등으로 인해 아시안게임을 출전못한다고 하자 네티즌들은 맹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군면제를 받았으니 안가는것이 아니냐는 등 도 넘은 조롱을 했다. 이후에 밝혀진 바로는 뇌경색 때문에 안면마비가 왔다고 한다. 김광현은 안면마비 증세보다도 악플이 더 마음이 아팠다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부상여파 때문인지, 2011년에는 김광현 답지 않은 투구를 보여줬다. 사실 김광현은 당시 SK 감독인 김성근 감독에게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출장했다. 관리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로 인해 김광현은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된다.
<김광현의 최악의 시즌인 2011년 성적>
경기 | 이닝 | 승 | 패 | 평균자책점 | WHIP |
17 | 74.1 | 4 | 6 | 4.84 | 1.55 |
2012년도는 2011시즌보다야 조금 낫긴 하지만, 여전히 김광현 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일단 어깨 재활로 인해 6월이 돼서야 1군 엔트리에 합류를 했고, 1군에서도 그닥 좋은 투구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투구내용을 보였고, 그래도 김광현이다 라는것을 포스트시즌에서야 겨우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어깨 부상이 재발하여 다시 재활에 들어갔다.
13시즌은 재활한 첫 해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여줬고, (10승9패 4.47 133이닝 소화)
14시즌의 김광현은 다시 부활을 알리는 듯했다. 13승 9패 173.2이닝 소화 평균자책점 3.42 (2위) 등 타고투저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김광현은 본인이 메이저리그를 가고 싶다고 구단에게 이야기를 했고, 포스팅을 해 샌디에이고가 200만달러로 응찰을 했다. 에이전트가 한 달 여간 협상을 했지만, 결국 계약에 실패하며 메이저리그행은 좌절됐다.
하지만, 역동적인 투구폼 탓인지 고교시절과 프로 초반의 혹사 탓인지 김광현에게 다시 부상이 찾아왔다.
결국 17시즌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당시 16년 11월에 김광현은 FA로 4년 85억 계약을 했는데 야구팬들은 김광현 정도 투수가 요즘 FA시장을 고려했을때 4년 85억이면 혜자가 아니냐 라는 소리가 많았지만, 수술때문에 17년를 통째로 못 나오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3년 85억을 계약해준 SK가 대우를 해줬다는 의견으로 바뀌었다.
당시 SK 감독인 힐만은 수술을 하고 복귀한 김광현을 관리를 많이 해줬다. 김광현은 수술 이후에 구속이 줄어든것은 커녕 더 구위가 좋아져 타자들을 윽박지르는 투구를 하였다. 규정이닝에 8이닝 모자랐지만, 수술 이후 복귀 첫 시즌은 대성공이었다.
<2018시즌 김광현의 성적>
경기 | 이닝 | 승 | 패 | 평균자책점 | WHIP |
25 | 136 | 11 | 8 | 2.98 | 1.14 |
김광현의 활약은 한국시리즈에서도 계속됐다. 4차전에 선발등판에 6이닝 무실점, 6차전은 마무리로 나와 본인이 3타자를 깔끔하게 잡음으로써 우승을 확정짓게 된다.
2019시즌은 더 좋아진 투구를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에이스의 재림이었다. 본인의 커리어하이인 2010년과 똑같은 승수 17승을 기록했다.
<2019시즌 김광현의 성적>
이닝 | 승 | 패 | 탈삼진 | 평균자책점 | WHIP |
190.1 | 17 | 6 | 180 | 2.51 | 1.24 |
플레이스타일
매우 역동적이다. 다리를 매우 높게 들고, 정통 오버핸드로 큰 키에서 내려꽂는다. 평균 직구 구속은 147KM정도며 그외에도 130후반 140초반의 구속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2019년도 들어서는 스플리터도 15퍼센트 정도 구사를 한다.
라이벌
라이벌로는 류현진이 메이저가기전에는 가장 큰 라이벌은 류현진으로 꼽혔다. 그 당시 영건 좌완 파이어볼러 두명은 야구팬들을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김광현의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인한 내구성이 떨어지자 류현진이 더더욱 치고나갔고, 지금은 라이벌이라고 하기는 좀 멀어졌다고 본다. 사실 류현진이 KBO 있었을때도 김광현보다는 한 수 정도 위였다.
지금 라이벌은 양현종이라고 생각한다. 둘다 좌완이고 청소년대표팀 동기며 여러가지 공통점이 많다. 원래는 김광현이 훨씬 위였으나, 요새는 양현종이 평균자책점 1위를 찍는 등 어마무시한 호투를 보여주기 때문에 김광현과 견주기 손색이 없다.
여담, FA 및 빈글러브 태그 논란
2010년 9월경에 양준혁이 은퇴경기를 했다. 그때 선발은 부상 전에 한참 구위가 좋을 때의 김광현이었다. 김광현은 은퇴경기를 하는 양준혁에게 3연타석 삼진을 잡았다.
김광현이 다시 메이저리그를 도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메이저리그를 안가게 된다면 2020시즌이 끝나고 FA자격을 재취득한다.
2015년도에 김광현이 빈글러브 태그를 해서 논란이 있던적이 있다.
김광현 선수가 프리미어 12에 출전을 하게 되는데 양현종 선수와 원투펀치로서 좋은 활약을 해 대한민국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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